5월 31일 교회 소식
- 원주 순복음 중앙교회
- 5월 31일
- 5분 분량
🕊️ 오황동 목사님이 써 내려가는 사도신경 강해
제14강 –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 제목: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
📜 본문: 사도행전 1장 6–11절, 히브리서 1장 3절, 로마서 8장 34절
1. 서론
사도신경은 복음의 진리를 선명하게 요약한 신앙의 고백입니다.오늘 우리가 묵상할 고백은**“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의 승천 사건과 하늘 보좌에서의 사역, 즉 중보자의 직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신 사건은 단지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사역의 완성과 하나님의 우편에서 왕으로서의 다스림과 중보 사역의 시작을 선포하는 거룩한 선언입니다.
2. 본론
1) “하늘에 오르사” – 예수님의 승천 (사도행전 1:9~11)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지상 사역을 마치신 후, 제자들과 500여 형제들이 보는 감람산에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는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사건이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구속사적 사건입니다.
👉 예수님의 승천은, 그분이 이 땅에 오실 때는 가장 낮고 비천한 모습이었지만,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맡아 메시아로 오셔서 그 사명을 완수하신 후에는,하늘나라로 영광스럽게 올라가신 왕의 행진입니다.
2)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히브리서 1장 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고대 세계에서 ‘왕의 우편’은 가장 높은 권세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예수님이 이 땅에 보내심 받은 사명을 완성하셨기에, 본래 그분의 자리인 하나님과 동일한 보좌에 앉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지금도 만유를 다스리는 권세자라는 의미입니다.
👉 그렇습니다.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마치신 지금은 하늘로 올라가셔서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지금도 우리 인생과 교회와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3) 중보자의 사역 –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님
말씀:“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 곧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신이라.” (로마서 8장 34절)
예수님은 지금도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 눈물, 기도를 아시고, 친히 아버지께 간구하십니다.
👉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우리 주님의 사랑은 멈출 줄 모르며,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사역은 끝이 없습니다.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끊임없이 영혼 사랑과 인류 구원을 위해 밤낮으로 중보기도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3. 적용 – 우리는 이 고백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첫째, 예수님의 승천을 믿으십시오.
그분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하늘에서 다스리시며 우리 삶을 주관하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광 중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둘째, 위의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십시오.
골로새서 3장 1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땅의 것만 바라보지 말고, 하늘의 가치와 영원한 소망,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중보하심을 신뢰하고 기도하십시오.
기도할 때 혼자가 아닙니다. 하늘 보좌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중보자의 예수님을 의지하며,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십시오.
4. 결론 –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 지금도 일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예수님은 지금도 하늘 보좌에서 왕으로, 중보자로 계십니다.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삶의 모든 순간을 도우시며, 다시 오실 주님으로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시며,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 기도
“하늘에 오르신 주님,모든 일을 마치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지금도 저희를 위해 중보하시며 다스리시는 주님의 권세를 믿습니다.믿음으로 위의 것을 바라보게 하시고,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 예고
다음 시간에는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고백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에 대해 묵상하겠습니다.
성전을 아름답게 가꾸는 손길들


한겨울 얼어 있던 흙이 봄바람에 기지개를 켜듯, 성전 입구의 계단도 매년 봄이면 조금씩 틀어지곤 합니다.지난주 화요일, 26도를 오르내리는 이른 더위 속에서도 임창진 집사님께서 자원하여 계단 보수 공사를 마무리해 주셨습니다.
또한 주중에는 최기식 장로님께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잔디를 정성껏 깎아 주셔서,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아름다운 콘도에 온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주님의 마음으로 정성껏 단장되어,사랑하는 성도님들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있습니다.주님의 성전을 아름답게 돌보는 착하고 충성된 종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번 주일에도 주의 전을 향하여 나아오는 모든 성도님들 위에,신령한 은혜와 하늘의 복이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로뎀 그늘 아래서 피어난 감사의 교제

교회 입구에 들어서면, 초록 잎이 무성하게 감싸고 있는 가운데 노란 금계국들이 옹기종기 피어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냅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이면, 이 꽃길 사이로 권사님들이 한 분, 두 분 모여들어찬양이 흐르는 가운데 수요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마치고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함께 식사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이번 주에는 성전 뒤편에 마련된 그늘막 “로뎀” 아래서 따뜻한 식탁을 함께했습니다.
이날의 점심 메뉴는 전국 맛집으로 소문난 ‘삼청당김밥’이었고,이는 바로 우리 교회 신현아 집사님(010-4794-7792)이 운영하시는 사업장입니다.믿음 안에서 준비된 정성스러운 음식은 그 자체로 감사의 나눔이 되었습니다.
이날 교제 가운데, 다가오는 박명순 권사님의 칠순을 함께 축하하며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지 의논하였습니다.서로 마음을 모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칠순 감사헌금을 드리자.
성전 꽃꽂이로 주님께 영광을 올리자.
주일에 간단한 음식을 더 준비해 성도들과 함께 나누자.
성경은 우리에게 기념일을 지키라 명하십니다.기념일은 단지 한 날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리고, 그날의 의미를 깊이 새기며우리의 삶을 더욱 존귀하게 만드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아름다운 로뎀 그늘 아래서, 믿음의 교제와 감사가 꽃피게 하신 하나님께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교회는 오늘도 은혜로운 만남과 따뜻한 나눔으로,주님의 품과 같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응 임계점과 감사의 힘
우리 삶에는 ‘반응 임계점(response threshold)’이라는 개념이 작용합니다.이는 어떤 자극에 대해 반응하거나 행동으로 옮기는 민감도의 차이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쓰레기통이 반쯤만 차도 바로 비우지만,어떤 사람은 넘쳐야만 움직입니다.이처럼 사람마다 행동의 기준이 다르고, 그 차이는 가정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가사 노동에서 반응 임계점이 낮은 배우자는 늘 먼저 움직이게 됩니다.하지만 그 수고에 대한 감사나 인정 없이 반복되다 보면,서운함과 억울함이 쌓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왜 집이 이렇게 엉망이야?”라는 말에“몰랐어.”라고 대답하는 상황이 반복되면,보는 관점과 책임감의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갈등은 반복되지만,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감사로 반응하면관계는 회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진심 어린 감사는 가사 분담의 불균형에서 오는 감정의 골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당신 덕분에 편했어.”“수고 많았어, 고마워.”이런 간단한 말 한마디가수고를 불평이 아닌 선물로 바꾸는 힘이 됩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공동체입니다.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서로를 세워가는 공간입니다.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감사가 사라지면 관계는 무뎌지고, 마음은 멀어집니다.
특히 부부 사이에서의 감사는 단순한 예의를 넘어서,가정의 중심을 잡아주는 영적인 윤활유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가족끼리는 말 안 해도 알아.”라고 말하지만,오히려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욱 자주, 구체적으로 감사해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수고는 당연시되고,배려는 소모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회 연구에 따르면,남성들이 감사 표현에 더 서툰 경향이 있습니다.성과 중심의 사회문화에 익숙해진 탓에,직장에서의 태도가 가정에서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가정은 서열이 아닌 사랑과 동등한 파트너십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입니다.그렇기에 남성일수록 감사를 의식적으로 훈련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의 사라 앨고우(Sara Algoe) 교수는실천 가능한 감사를 위한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 가사 업무를 사전에 계획하고 나누기✔ 감사를 즉시 표현하기✔ 감사 표현은 ‘내가 받은 유익’보다 ‘상대방의 행동’을 칭찬하기
예를 들면,“그렇게 해줘서 고마워.”보다는“당신의 꼼꼼함 덕분에 정말 잘 정리됐어요!”라고 말해보세요.
감사는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신앙인의 삶의 태도이며,가정을 회복시키는 영적 도구입니다.
오늘도 배우자의 작은 수고 하나에,진심 어린 감사로 반응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랑은 자라고, 가정은 치유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책임감, 그리고 사명감
사람들은 어떤 일을 맡게 되었을 때, 누구나 그 일을 잘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우리는 그것을 ‘책임감’이라고 부릅니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신뢰와 인정을 받게 되고,사회적으로도 성공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책임감은 보통 ‘의무감’에서 시작되지만,**‘사명감’**은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출발합니다.
사명감은 단지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근성만이 아닙니다.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게 맡겨진 일을 진실하게 감당하려는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달란트의 이야기를 떠올려 보십시오 (마태복음 25:14–30).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나, 두 달란트를 받은 자나 모두 동일하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습니다.
주님은 결과의 양이 아닌, 책임 있는 태도와 성실한 마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책임을 가볍게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무책임한 태도가 공동체 전체의 분위기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반면에, 사명감 있는 한 사람의 섬김은 교회 전체를 건강하게 세우는 기둥이 됩니다.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주, 주일 준비를 위해 묵묵히 사명을 감당하시는 마리아팀(임명자: 송경옥, 김종미)을 축복하며,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린도전서 4장 1-2절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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